
혹시 요리 연구가 이혜정의 이름을 들으면, 넉넉하고 푸근한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하지만 이혜정의 결혼 초기는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빅마마’라는 별명을 얻기 전,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고된 시집살이를 8년 넘게 견뎌야 했습니다.

1979년, 고작 23살이던 이혜정은 4살 연상의 남편과 결혼하며 시댁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첫날부터 시어머니는 차갑게 선을 그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푸시는데 저를 건너뛰시더라고요.” 결국 밥그릇에는 주걱에 붙은 밥풀 한 덩이가 전부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그 순간, 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올라왔지만 아무도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조차 “우리 집은 밥 먹을 때 말 안 해”라며 무심했습니다. 그렇게 사흘을 울며 견딘 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결국 시어머니의 밥그릇과 자신의 것을 바꿔놓으며 조용히 반항했습니다. 하지만 서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의 식사를 모두 챙긴 뒤에는 비워진 식탁에서 홀로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일부러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펴 들었고, 식사하는 며느리의 앞을 막았습니다. 처음엔 그 신문이 너무 커서 감히 비켜달라는 말을 못 했고,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걸레를 들고 발밑을 닦아야 했습니다.

8년이 지난 뒤에서야 “저 밥 좀 먹게 일어나주세요”라고 겨우 말할 수 있었다는 이혜정. 그는 “그때 저는 자존감이 없었어요”라며 담담하게 밝혔습니다. 지금의 유쾌하고 강단 있는 이미지와 달리, 마음 한구석에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겁니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혜정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 들으며, 자신도 이제 그 시절을 놓아주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혜정의 고백을 들은 사람들은 “참 며느리한테 너무했다”, “며느리도 누군가의 귀한 딸인데”, “남편도 중간 역할을 못 했네”라며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혹시 당신이라면 그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이혜정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시집살이의 씁쓸한 현실을 되새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