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부터 너무 많은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남자가 있습니다. 195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엄영수, 가난 때문에 매일 생선 행상을 하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삶의 어려움이 그의 꿈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발안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15살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 공사판에서 번 돈으로 성북고, 홍익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길을 스스로 열어낸 것이죠.

그러나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은 사랑과 가정에서 찾아왔습니다. 29살에 17세 연하의 신인 탤런트와 결혼했지만, 8년 만에 이혼했고, 재혼도 불과 6개월 만에 끝나버렸습니다. 두 번의 이혼은 그를 끝없는 외로움에 빠뜨렸습니다. 이 실패를 웃음으로 바꿔야 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이혼 개그맨’이라 자조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엄영수는 혈연보다 진심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친아들 외에도 두 번째 부인이 데려온 아들, 가사도우미의 아들, 그리고 부모를 잃고 찾아온 남매까지 가슴으로 품었습니다. 입양한 남매 본혁과 현아가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이 되었고, 딸 현아의 결혼식에서 “가슴으로 낳은 딸”이라며 흘린 눈물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가 버텨온 세월은 한 남자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게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미국 LA 패션쇼 사회를 맡았다가 재미교포 사업가를 만나게 됐습니다. 아내는 방송에서 그를 보며 위로를 얻었다고 고백했고, 두 번째 만남에서 직접 청혼을 했습니다. 결국 70세가 넘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교회에서 조용히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돌아보면 가난도, 두 번의 이혼도, 홀로 아이들을 키운 고독도 그를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모든 고비를 지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았습니다. 웃음으로만 기억하기엔 너무나 깊은 이야기. 그래서 엄영수의 인생은 개그맨으로서의 성공보다, 아버지로서의 사랑으로 더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