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상위 1%인데 배우하고 싶어서 서울대 대신 동국대 갔다는 배우

수능 상위 0.8%라면 누구나 서울대를 꿈꿉니다. 하지만 배우 김인권은 달랐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엄마가 살아나길 바라며 미친 듯이 공부했다”고 고백한 그는 전교 1등 성적에 수능 전국 상위권까지 찍었습니다. 서울대 원서도 냈지만 결국 선택한 곳은 동국대 연극영화과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영화감독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출발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997년 영화 송어로 데뷔했지만, 이후 11년의 긴 무명 시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폭마누라’, ‘말죽거리 잔혹사’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지만, 팬레터 한 통 없는 삶은 상처 같았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김밥을 배달하고 과외를 뛰며 겨우 버텼습니다. “김밥 배달하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너무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는 그의 고백에는 생존의 처절함이 묻어났습니다.

그런 김인권의 운명을 바꾼 작품은 영화 해운대였습니다. 설경구의 추천으로 캐스팅된 그는 ‘오동춘’ 역을 맡아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해운대 전과 후로 배우 김인권이 나뉜다”는 윤제균 감독의 말처럼, 1000만 관객의 사랑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하지만 김인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비스타가 아니라 관객이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다”며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연기력으로 미남 기준을 바꿔놓겠다”는 소박한 포부도 밝혔습니다.

무명 시절 내내 생존을 고민해온 그는 지금도 자신을 ‘생계형 배우’라 부릅니다. “예전보다 일이 주어질 때마다 감사해요. 언젠가는 다시 연극 무대에 서보고 싶습니다.” 서울대를 포기하고 택한 길, 11년 무명 끝에 찾아온 기적 같은 순간. 그 모든 시간은 결국 배우 김인권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