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록의 전설, 시나위·부활의 원년 멤버 김종서. 거침없는 고음과 무대 위 폭발적인 에너지로 국민 로커가 된 그는 사실 19년째 기러기 아빠라는 타이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한 채 데뷔했고, 슬하에 두 아이를 뒀지만, 가족은 일본에, 그는 홀로 한국에 남았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그를 기다리는 건 적막한 집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길이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재일교포 2세였던 아내 구정옥 씨를 만나 결혼을 결심했을 때, 장인은 “일본에서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김종서는 단호했습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겠습니다.” 그렇게 약속했고, 결국 그는 록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가도 컸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에도 일본에 가지 못했고, 대신 서태지와 동료들이 병원을 찾아 축하를 전했습니다.

무대 밖의 그는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해치지 않기 위해 기러기 아빠를 자처했습니다. 유명인 아버지 때문에 불편해질까 봐, 아이들이 학교에서 곤란한 일을 겪을까 봐 스스로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은 예상보다 더 외롭고 고단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자 2년 넘게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오랜만에 아이와 통화하면 서먹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이젠 외로움도 그냥 익숙해졌어요.” 인제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그는 스스로 백숙을 끓여 먹고, 전자레인지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갑니다. 가끔 누군가 “별거하느냐”고 묻지만, 그는 단호히 말합니다. “우린 잘 지냅니다. 이건 이혼이 아니라 아이들 교육을 위한 선택일 뿐이에요.”

수많은 무대를 뒤흔든 록의 아이콘이지만, 정작 인생의 가장 긴 싸움은 고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은 오늘도 조용히 그의 옆자리를 지킵니다. 하지만 김종서는 여전히 무대 위에 오릅니다. 오직 음악 하나로 버텨온 시간처럼, 이제는 익숙해진 외로움과도 함께 노래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