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무명 배우를 스쳐 지나가는 배경으로만 봅니다. 하지만 김혜수에게는 다릅니다. 그녀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20대 신인부터 70대 연기자까지, 세상에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이름과 나이가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단역 배우의 표정, 단 한 장면의 진심 어린 대사.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메모장에 기록하는 것. 김혜수에게는 그것이 작은 사명이자 애정 표현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내가 캐스팅 디렉터는 아니지만, 기억은 할 수 있잖아요.”

실제로 작품에서 어떤 배우가 필요할 때, 김혜수는 그 메모장을 꺼냅니다. 한 번 본 이름을 다시 떠올리고, 관계자에게 조심스레 추천합니다. 그렇게 건넨 한 마디가 어떤 배우에겐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됩니다.

김혜수의 ‘진짜 선배’다운 모습은 평소에도 드러납니다. 영화 밀수 제작발표회 현장, 주연 배우들이 박수받으며 무대에 오를 때, 무명 배우 곽진석은 혼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다가와 “자기, 잘 지냈어요?” 하고 웃으며 안부를 묻던 건 김혜수였습니다. 무대인사에서도 주연급은 이름만으로 환호를 받지만, 단역 배우들은 자신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합니다. 환호성도 거의 없죠. 그 순간 홀로 큰 소리로 박수를 치며 “멋지다!”라고 응원하던 사람도 김혜수였습니다.

배우 박정민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무명 시절 “집에서 밥 잘 안 먹고 시켜 먹습니다”라고 말하자, 김혜수는 “그러면 안 돼”라며 집 주소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문 앞에 먹을거리가 한가득 담긴 택배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작은 배려였지만, 그 순간 박정민에게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김혜수는 이렇게 말없이 무명의 이름 위에 사랑을 덧씌웁니다. 단 한 번의 격려, 단 한 번의 관심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용기가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포트라이트보다 중요한 건 그 빛에서 비켜난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라는 걸, 그녀는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