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을 찾아 넘어온 남쪽 땅에서, 그는 왜 세 번의 쓰라린 이혼을 겪어야 했을까요? ‘1호 귀순 배우’ 김혜영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기구했습니다.

평양국립연극단의 주연 배우였던 그는 아버지의 고향이 경상도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며, 결국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1998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잠시, 그의 결혼은 잇따라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첫 번째 남편은 연극 무대에서 그를 본 뒤 팬이라며 다가왔고,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바쁜 스케줄에 서로 멀어졌고, 어느 날 신혼집에 들렀다가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믿기지 않아 눈을 의심했지만, 그 순간이 현실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그는 “북한에선 남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첫 이별이 너무 참담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두 번째 결혼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악극 ‘홍도야 울지 마라’에서 만난 상대 배우와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으나, 지하 단칸방에서 기저귀 살 돈조차 없어 천을 빨아 쓰며 버텨야 했습니다. 가난이 전부는 아니었다며 구체적인 사연은 끝까지 비밀로 남겼지만, 결국 두 사람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이혼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결혼은 더 기막혔습니다. 세 번째 남편은 사업가였고, 처음엔 거절했지만 연이은 사건과 고소, 사고에 시달리던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자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화려한 신혼도 잠시, 남편이 돌연 구속되었고, 기다리겠다는 결심도 무색하게 감옥에서 이혼 통보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끝에 그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엄마, 웃는 얼굴이 제일 예뻐”라고 말해주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가요? 김혜영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알려줍니다. 어떤 고통도 언젠가 끝난다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희망이 찾아온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