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사극의 여왕’이라 불리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던 배우 김영란.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드라마보다 더 기구했습니다. 1977년 영화 처녀의 성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조선왕조 오백년, 용의 눈물 등 숱한 사극에서 조선의 여인들을 연기하며 국민 여배우가 됐습니다.

그녀는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에 출연해 친근한 이미지까지 얻었지만, 사적인 삶은 늘 고단했습니다. 1983년, 네 살 연상의 사업가와 첫 번째 결혼을 했지만 종갓집 며느리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밤늦게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족 누구도 배려해주지 않았고, 자신을 깨우는 TV 소리에 외로움을 절감했습니다. 결국 첫 결혼은 파국으로 끝났습니다.

이후 1990년 사업가 출신 두 번째 남편과 재혼해 아들과 딸을 낳았습니다. 다시 시작한 가정이었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과 친권 모두 남편에게 넘어갔고, 변호사조차 “울어보라”고 할 정도로 방법이 없었습니다. 김영란은 아이들을 떠나보낸 뒤, 홀로 남아 멀리서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더 가슴 아픈 건, 아이들이 유학길에 오르자 그녀는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시절엔 ‘기러기’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지만, 김영란은 10년 넘게 홀로 한국에 남아 자녀를 뒷바라지했습니다. 작은 사우나에서 반찬을 싸 가며 이웃과 밥을 먹고, 밤마다 베개 옆에 전화기를 두고 아이들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그 고독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고 담담히 말하며, 혼자가 편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무기력증을 이겨내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나고, 자연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사극에서 누구보다 강인한 여인을 연기했던 김영란. 실제 삶에서도 결국 묵묵히 버텨낸 한 여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