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3 때부터 나이트클럽을 ‘내 성전’으로 삼았다”…
김송, 끝없는 방황과 고통의 나날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한 여성. 방송인 김송 씨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고난과 방황의 시간을 고백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그림자 같은 존재였어요.“
“엄마가 경제적으로 힘들었기에, 다른 아이들처럼 예뻐받지 못했죠.“
“그때부터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꼈어요.”

어린 마음에 겪은 차별과 무시는 그녀의 내면을 조금씩 무너뜨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김송 씨는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헤매듯,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에 들어섰습니다.

“나이트클럽을 ‘내 성전’으로 삼았다”는 고백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고통과 혼란, 외로움에 짓눌린 그녀가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잠을 억지로 잤어요.“
“마음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죠.”
방황의 끝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어졌습니다.
경찰서에 가고, 무기정학을 당하고, 수업을 빼먹는 일이 잦아졌지만, 가출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린 남동생, 여동생 네 명과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인생의 시련은 더 잔혹해졌습니다.
그녀가 의지했던 남편, 강원래 씨는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고, 친정어머니는 말기 암 판정을 받아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습니다.
김송 씨 자신도 결핵성 뇌막염으로 인해 뇌병변 장애인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삶이 너무 무너져 내렸어요.“
“모든 게 한꺼번에 찾아왔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신앙이 내 마지막 구원이었어요.”

그녀는 신앙을 통해, 두렵고 무서운 고난들을 받아들이고 한걸음씩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김송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예인의 과거 고백이 아닙니다.

거친 파도 같은 인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 애쓴 한 사람의 처절한 생존기입니다.
그리고 그 생존기 끝에 지금의 그녀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진한 삶의 흔적을 담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