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밝은 미소로 시청자들을 웃게 하던 김원희. 하지만 그 미소 뒤엔 아무도 몰랐던 30년의 긴 싸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다른, 한 사람의 누나로서 감당해온 눈물의 시간을 아시나요?

김원희는 1992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후 놀러와, 자기야, 백년손님 등 국민 예능에서 MC로 활약하며 ‘국민 진행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늘 단정하고 따뜻한 언어로 사랑받은 그는 2015년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 MC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늘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남동생은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약 2미터를 떠올라 머리를 다쳤고, 뇌전증과 척추 기형이 찾아왔습니다. “집이 거의 응급실 같았다”는 말처럼, 발작과 통증으로 남동생이 울부짖는 날이 다반사였습니다. 사춘기에는 정신적인 병까지 겹쳐 스스로를 원망했고, 가족들은 매일이 전쟁 같았습니다.

주변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고통에 우는 동생 소리에 이웃이 학대를 의심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지쳐 쓰러진 후엔 김원희와 자매들이 간병을 나눠 맡았습니다. 성인이 된 남동생의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는 “가족이니까 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김원희가 지난해 방송을 중단한 이유도 놀라웠습니다. 오랜 꿈이던 사회복지사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0년간 남동생을 돌보며 배운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동생이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됐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따뜻함이 묻어났습니다.

지금도 그는 남동생의 목욕을 시키고 손발을 씻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이티 심장병 어린이와 국내 소외 이웃을 돕는 일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의 삶이지만, 사실은 평생 이어온 선택과 책임의 기록입니다.

이 이야기를 접한 누리꾼들은 “2~3년만 해도 삶이 무너지는데 30년이라니”,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 몰랐다”, “방송에서 늘 웃어주셔서 더 감사하다”며 뜨거운 위로를 보냈습니다.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고 있진 않나요? 김원희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은 희생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빛나게 한다는 걸,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