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수지입니다. 오늘은 놀라운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건물만 22채를 소유한 엄청난 자산가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결정을 내린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요?
뷰티업계의 큰 손, 이상일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1세대 남성 헤어 디자이너, 이상일입니다. 이름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그가 바꿔놓은 미용실 문화는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프리미엄 헤어살롱’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미용사는 단순 기술자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는 “이제 미용도 디자인이다”라고 외치며 ‘헤어 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한 선구자입니다.

꿈을 바꾼 4,200원의 번역료

사실 이상일 디자이너의 원래 꿈은 패션 디자이너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연히 번역 아르바이트로 읽은 외국 잡지 한 편에서 ‘남자 미용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면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의 인생을 바꾼 번역료는 고작 4,200원이었다고 하니, 정말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죠!

프랑스 유학 그리고 국내 최초 남성 헤어 디자이너

이후 그는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1981년 프랑스 국립미용학교를 수료한 뒤 한국에 돌아와 ‘헤어뉴스’라는 프리미엄 헤어숍을 열며 국내 최초 남성 헤어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당시 커트비가 15,000원이라는 상상도 못할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헤어숍은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고 합니다.

앙드레김 양머리의 탄생 비화

당시 유명했던 앙드레김 양머리 또한 이상일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헤어 스타일링을 도맡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이상일 디자이너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어떻게 하면 고객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일에 미쳐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건물 22채 소유에도 전 재산 기부 결심
현재 건물 22채를 포함해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된 이상일 디자이너는 놀랍게도 “장례비만 남기고, 다 사회에 내놓겠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돈보다 더 큰 유산
수지는 이상일 디자이너의 결정에 대해 진정한 ‘멋’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그의 인생을 통째로 기부하겠다는 결정은 돈보다 더 큰 유산, 즉 자신의 철학을 담은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이상일 디자이너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이상, 수지였습니다. 다음에도 더 흥미로운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