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중에도 생방송” 33년 출근한 라디오 하차 통보에 결국 무너진 그녀

26살의 김혜영이 처음 라디오 부스에 앉았을 때, 그 시간들이 인생의 절반을 넘길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1987년 시작한 MBC <싱글벙글쇼>. 낮 12시 20분이면 전국의 점심시간을 따뜻하게 물들이던 프로그램이었고, 김혜영은 그 자리를 단 두 번 빼고 33년을 지켰습니다.

결혼식 날에도 웨딩드레스를 입기 전 생방송을 진행했고, 신혼여행지 제주도에서도 이원 생방송으로 청취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라디오는 가족보다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 긴 여정을 끝내야 한다는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 그녀는 담담한 척 했습니다. “그날이 왔구나” 싶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은 달랐습니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꽃다발을 안고 돌아오던 날, 경비원이 “이제 어떡해요?”라고 묻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며칠 뒤 목욕탕에 갔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등을 밀어주던 세신사가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고 말하자, 부끄러움도 잊고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동안 눌러온 감정이 그제야 다 터져버린 겁니다.

김혜영은 <싱글벙글쇼>를 “셋째 딸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33년간 품고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기분, 서운하지만 축복해줘야 하는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마지막 방송에서 “저는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여러분이 ‘싱글벙글쇼’의 진짜 주인공입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청취자들은 더 많이 울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들이 군대 갈 때 사연을 보냈는데 지금 그 아들이 마흔넷, 세 아이 아버지가 됐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누군가의 청춘과 삶을 함께 지나왔습니다.

하차 후에도 KBS <김혜영과 함께>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지만, 그것도 3년 만에 마무리했습니다. 지금은 라디오를 그리워하는 꿈을 꾸면서도, 마음은 조금씩 정리됐다고 말합니다.

못 가본 해외여행, 제주도에서 살아보기, 친구들과 점심 약속… 이제서야 그녀만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그려봅니다.
김혜영은 말했습니다. “저는 행운아예요.” 그 긴 시간, 진심으로 누군가와 함께했기에 더 짧게 느껴진 것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