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안선영을 ‘홈쇼핑 여왕’, 혹은 1조 매출을 기록한 성공한 사업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엔 너무 오래 참아온 눈물이 있었습니다.

안선영의 어린 시절은 고단했습니다. 네 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부산 바닷가 끝자락 빈민촌에서 살았습니다. 햇볕조차 들지 않는 방, 늘 끊기는 수도, 봉지째 아껴 먹던 쌀. 그 속에서도 어린 딸은 주말이면 화장품을 팔러 다니는 어머니를 따라 손님 집에 갔습니다. 낯선 집에서 다른 아이와 놀아주며 팔린 화장품은 다섯 개, 여섯 개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딸에겐 꿈이 있었습니다. 연기를 배우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했고, 차량 광택제와 오렌지를 팔아 한 달 반 만에 500만 원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가족의 빚은 억 단위로 불어났고, 어머니의 가게도 무너졌습니다. 결국 안선영은 꿈을 접고 귀국해 개그맨 공채 시험을 봤습니다.

홈쇼핑 출연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왜 배우가 물건을 파냐”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1시간에 28억 매출을 올리며 ‘홈쇼핑 여왕’으로 불렸고, 데뷔 4년 만에 어머니의 빚 1억4000만 원을 모두 갚았습니다. 이후에는 1조 원 매출을 올리며 건물주가 됐습니다. 누구도 부럽지 않을 꽃길 같았지만, 행복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벌써 7년째, 병원과 집을 오가며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아파?” 수십 번 반복되는 질문에, 가끔 맑아진 정신으로 “내가 선영이 고생 안 시키려면 정신 차려야 하는데…”라고 말하던 어머니.

안선영은 “엄마를 용서하는 데 40년이 걸렸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남편처럼 의지하던 시간이 버겁고 두려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감정을 내려놓았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딸의 차에 타면 “이게 네 차냐? 네가 성공했네”라며 웃습니다. 그리고 안선영은 더 이상 눈물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또 까먹음 어때요. 내가 다 기억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