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제2의 한석규’로 불리며 멜로계의 유망주였던 배우 이성재. 하지만 그에게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97년 드라마 거짓말로 주목받은 그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주유소 습격사건, 플란다스의 개, 신라의 달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스펙트럼을 넓혔고, 그때까지만 해도 누구나 그의 전성기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영화 공공의 적이 모든 것을 바꿔놨습니다. 역대급 사이코패스 조규환을 연기한 이성재는 소름 끼치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했습니다. 차갑게 웃으며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에게 자상하게 대하는 기괴한 모습. 관객들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 같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그 찬사는 곧 족쇄가 되었습니다.

이미지는 단숨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집혔고, CF와 멜로물 출연은 끊겼습니다. 이후 작품들은 줄줄이 실패했습니다. 신석기 블루스에선 과도한 분장으로 혹평을 받았고, 홀리데이에선 범죄 미화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상사부일체는 코미디 실패작으로 꼽혔고, 이성재는 에로 영화까지 선택하며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영화에서 밀려난 그는 드라마로 돌아갔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시청률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존재감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기러기 아빠로서 현실적인 삶을 보여주며 다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구가의 서에서 또다시 악역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매일 극악한 캐릭터에 몰입하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유학자금 때문에 고민하던 그에게 홍삼 광고가 들어왔지만, 다음 해엔 박지성으로 모델이 교체됐고, 이후 출연작 5편이 연달아 무산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이성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JTBC 검사내전에서 책임감 강한 부장검사 조민호 역을 맡아 다시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조규환이라는 인생 캐릭터는 그의 영광이자 고통이었지만, 이성재는 결국 자신만의 무대를 다시 만들어냈습니다.